사회일반 | ‘130㎏ 찐빵맨’이 부는 희망 멜로디언 | 등록 : 2012.06.11 18:52 수정 : 2012.06.12 08:46 사랑의열매-한겨레 공동기획 RT, 소통이 나눔이다 : ④중복장애 1급 박상준씨 친아빠는 마약·새아빠는 매질…엄마도 조울증에 간경화로 시름 하체장애로 걷기 힘들어 비만…전문 간병인 고용 박상준(20)씨의 웃음은 전염성이 있다. 주변 사람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오르게 만든다. 11일 오전 경기도 부천 집에서 만난 박씨는 멜로디언을 연주했다. ‘학교종이 땡땡땡’이었다. 음정은 조금 틀렸지만 리듬은 ‘땡땡땡’의 박자를 맞췄다. 연주가 끝나자 땀 닦는 시늉을 하며 박수를 유도했다. 웃으며 팔뚝 자랑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박씨 덕분에 웃었다. 박씨의 친아버지는 마약사범이었다. 아버지는 다운증후군 아들이 태어난 직후 집을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 송아무개(46)씨가 새로 맞이한 양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양아들을 때렸다. 8년 전, 어머니 송씨는 아들 박씨와 양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여동생 박성은(가명·11)양을 데리고 도망쳐 나왔다. 어머니 역시 아들 박씨를 온전히 보살피진 못했다. 어머니 송씨는 가정불화로 입은 상처에다 두번째 남편이 딸을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술과 담배에 의존해 지내다 3년 전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온종일 집에 누워 지내던 어머니는 아들 박씨를 거의 돌보지 못했다. 성인의 나이가 된 박씨를 돌보는 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었다. 오빠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오빠가 심심할 때 친구가 돼 같이 놀았다. 동생 성은이가 없으면, 박씨는 짜장면과 볶음밥을 먹었다. 요리를 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매번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을 시켰다. 박씨는 지적장애와 하체장애를 가진 중복장애 1급 장애인이다.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4㎝ 짧기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한다. 박씨는 대부분 시간을 방에 갇혀 만화영화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했다. 결국 키 150㎝에 몸무게 130㎏의 초고도비만이 됐다. 자려고 누우면 살이 기도와 허파를 눌러 숨을 못 쉬는 무산소 상태가 자주 찾아와 잠을 설친다. 접힌 살이 짓무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탓에 박씨는 말도 서툴다. 이름을 물으면 부정확한 발음으로 “앙당웅”이라고 답한다. 대신 박씨는 자신만의 수신호를 개발했다. 왼손 검지로 오른손바닥에 원을 그리면 ‘심심해’라는 뜻이다. 싫을 때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폈다 구부린다. 배가 고프면 손가락으로 배에 원을 그리고 입을 가리킨다. 박씨 가족은 지난 2월 부천시무한돌봄센터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의료 지원 등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던 박씨는 이불에 용변을 봤다. 돌봄센터의 전문가가 처음 박씨를 찾아온 날, 집 마당에는 더러워진 이불 십여장이 그냥 쌓여 있었다. 인근 원미초등학교 순회특수교육교사가 지난 2년간 매주 두번씩 나와 공부를 가르치게 된 것도 박씨를 돕던 교회 쉼터 자원봉사자가 구청에 강력하게 요구한 뒤에야 가능했다. 박씨는 올해 특수교육 초등과정을 졸업하고 중학생이 됐다. 지난 3월부터 원미중학교 순회특수교육교사가 매주 세번씩 나와 박씨에게 말과 숫자 등을 가르쳐준다. 지금 박씨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은 병원에서 24시간 돌봐줄 전문 간병인을 고용할 비용이다. 그나마 곁에 있던 어머니는 조울증 치료가 필요하다는 돌봄센터의 설득에 지난 4월 병원에 입원했다. 이모 송아무개(44)씨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가족을 떠나 상준씨와 같이 생활하며 대신 돌보고 있으나 힘에 부친다. 박씨에게 말을 가르쳐줄 언어치료사를 고용할 비용도 간절하지만, 생활비에는 여유가 없다. 박씨와 어머니, 여동생 앞으로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수당 등 한달에 114만원이 나오지만, 그동안 쌓인 빚을 갚느라 50만원, 어머니 약값으로 30만원, 집세 20만원 등을 치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11일 박씨는 본격적인 비만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사정을 전해들은 인천시 나사렛한방병원(이사장 이강일)이 무료로 입원치료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날 아침, 여동생 성은이는 오빠와 헤어지기 싫어 울었다. 오빠 박씨의 볼에 뽀뽀한 뒤에야 등교했다. 이모 송씨는 조카 박씨가 가장 좋아하는 짜장면을 시켜줬다. 비만 치료에는 좋지 않겠지만, 그래도 한동안 박씨가 먹지 못할 음식이었다. 짜장면 그릇을 받아든 박씨는 미소를 지었다. 짜장면 그릇을 비우고 힘겹게 집을 나서는 박씨를 보며 이모 송씨가 말했다. “우리 상준이 별명이 ‘호빵맨’이에요. 항상 명랑하고 유쾌하거든요. 병원 가서도 주변 환자들을 웃게 만들 거예요.” 이모 송씨는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부천/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